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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우리.

by allthatlocal 2025.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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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었다. 교실 창 밖으로 햇살이 밀려들고,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물이 쏟아지듯 복도로 쏟아져 나갔다. 나는 천천히 물병을 들고 일어났고, 창문 가까이 서서 네가 나오길 기다렸다. 너는 항상 늦게 나왔다. 정확히 3분쯤. 그리고 나는 그 3분을 매일, 누구보다 먼저 기다렸다. 처음엔 우연이었다고 생각했어. 문구점 앞에서, 급식 줄에서, 체육 시간마다 네가 내 옆에 있는 건 그저 학교라는 공간이 좁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알게 됐어. 내가 너 있는 곳으로, 무의식적으로 먼저 향하고 있었다는 걸. “또 기다렸지?” 늘 땀이 맺힌 이마와 함께 웃으며 다가와 물티슈를 내밀던 너. 그 작은 행동 하나가 한여름 무더위를 단숨에 식히곤 했어. 네가 내게 먼저 다가온 건 아니었지만 늘 먼저 웃었고, 먼저 인사를 건넸어. 그 웃음은 어떤 말보다 더 크게 들렸고, 그 인사는 누가 뭐래도 반가웠지. 점심시간엔 일부러 늦게 가는 척 하면서
네가 쟁반을 들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고, 매점에선 네가 좋아한다던 아이스크림을 몰래 같이 고르며 “어? 나도 이거 좋아하는데” 웃기지도 않은 우연을 연출했지. 어느 날은 비가 왔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여름비. 우산이 없던 나는 교문 앞 처마 밑에서 망설이고 있었고, 네가 내 앞에 섰어. 검은 우산 아래로 너는 조용히 말했지. “같이 갈래?” 그 길은 짧았지만, 평생을 걷는 기분이었어. 빗소리에 너의 말이 묻히지 않게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말했고, 그 작은 우산 아래서 어깨가 아주 조금 스쳤을 뿐인데도 나는 하루 종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그 해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직전, 너는 자전거를 끌고 학교에 왔어. 하얀 반팔 셔츠에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너는, “탈래?” 말했지. 말도 안 되게 뜨거운 날이었지만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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